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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노스트라다무스 그림 예언서 "궁수"와 "여인"

/ 육문(陸聞)

【정견망】

4. ‘바퀴’, ‘궁수’와 ‘여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 중에 “세번째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시에 네로가 등장하는데 네로는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로 자신의 궁궐을 확장하기 위해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하고 싶었다. 이에 사람을 시켜 로마 성 주위에 불을 질러 많은 가옥이 불타게 했다. 그 후 기독교 신자들이 방화했다며 죄를 뒤집어씌우고 로마시민들의 증오심을 선동해 기독교 신자들에게 잔혹한 박해를 가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네로가 로마 성을 불태운’ 이야기다.

‘예언집’에서는 “세번째 사람이 수위(首位)를 차지하고 네로보다 훨씬 나쁜 짓을 저지른다”고 했다. 전 중공 두목 장쩌민은 중공 ‘제3세대 영도인’으로 불렸으며 1999 7월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으니 예언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이 두 차례 박해는 모두 집권자가 방화를 이용해 불을 붙였다. 네로는 로마 성을 불태웠고 장쩌민은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을 날조했다. 가히 세기적이라 불릴만한 이 사기극으로 민중들의 증오를 선동해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가중시켰고 심지어 살아있는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장기를 적취하기에 이르렀다.

 

 

이 그림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한 파룬궁 수련자가 위협당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한 여인이 마침 파룬궁(法輪功) 2장 공법 ‘양측포륜(兩側抱輪)’을 연마하고 있다. 그녀의 앞에는 두 눈이 가려진 상태에서 손에 활을 든 사람이 활을 당기며 그녀를 위협하고 있다. 궁수는 활을 당기며 언제든 화살을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 위에 하나의 ‘바퀴’와 ‘달’이 있다. 여인은 생사의 위협에 직면해 연공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활에 맞아 죽어야 한다.

노스트라다무스는 한 폭의 생생한 그림으로 한 수련단체가 박해받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위에 그린 바퀴는 바로 이 단체의 표지이며 궁수는 박해를 가하는 사람을 암시한다. 주의할 것은 그림 속에서 그의 두 눈이 가려져 있다는 것인데 이는 박해를 실시하는 사람 역시 속고 있음을 설명한다. 궁수 아래에는 또 한 마리 소를 그렸다. 주지하다시피 소는 가축에 속하니 노스트라다무스는 박해에 가담한 사람을 가축에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오른쪽 하단에는 저울이 하나 있는데 저울은 무게를 다는 도구다. 그렇다면 이 그림 속에서는 무엇을 달고 있을까? 전체적인 구도에서 보자면 마치 이번 박해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가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언가는 한 폭의 그림으로 아주 생생하게 한 선량한 여인이 파룬궁을 수련하여 생사의 위협에 처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바퀴’ 옆에는 또 하나의 달이 있는데 이 달이 대표하는 것은 무엇일까?

 

5. ‘바퀴’를 지니고 불법을 전하는 이는 누구일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에서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잃어버린 예언서’를 해독할 때도 이 방면의 요소를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림을 보면 달에 끈이 달려 있고 위로 ‘바퀴’에 걸려 있다. 마치 낙하산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은데 한 마리 큰 전갈이 아래에서 집게를 휘두르고 있다.

이 그림은 상당히 분명해 보이는데 ‘바퀴’, ‘달’과 또 ‘전갈’이 있다. 구도로부터 보자면 ‘바퀴’와 ‘달’이 사로 관련되어 있는데 바퀴 아래에 달이 달려 있거나 또는 달이 바퀴 아래 달려 있다. 이 그림을 풀이하자면 먼저 달이 무엇을 대표하는지 알아야 한다.

달을 언급하면 중국 사람들은 곧 항아(嫦娥)를 연상하는데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항아분월(嫦娥奔月)’이란 신화가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달을 말하면 곧 ‘아르테미스’를 떠올린다. 왜냐하면 전체 유럽이 모두 고대 그리스 신화의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유럽인들에게는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이 비교적 익숙하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달과 사냥의 여신이다.

이 단서에 따라 계속해서 해독해보면 그 결과는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바퀴를 지니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아르테미스’는 대체 누구인가? ‘바퀴’를 지니고 세상에 내려와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이 ‘바퀴’는 또 대체 어떤 ‘바퀴’일까?

 

이 그림을 여기까지 풀이하면 수수께끼의 답은 거의 다 풀린 것과 마찬가지다. 바퀴는 바로 파룬(法輪)을 가리키며 지금 세상에서 바퀴를 갖고 불법(佛法)을 전하는 이는 바로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이다.

물론 ‘잃어버린 예언서’의 그림 예언은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예언집’에서 노스트라다무스가 쓴 10여 편의 ‘바퀴’ 관련 예언시들과 서로 연계되어 있다.

‘아르테미스’란 단어로 ‘예언집’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예언시를 찾아낼 수 있다.

싸롱(Salon), 모졸(Mausol), 타라스콩(Tarascon)
여섯 개의 아름다운 채색문,
그곳에는 아직 피라미드가 우뚝 서 있네
그들이 덴마크의 귀인을 구하러 와서
아르테미스 신전에 가산(家産)을 바치네.

여기서 싸롱은 노스트라다무스의 고향(거주지)으로 전에 그가 살던 곳이다. 그는 그곳에서 ‘예언집’과 ‘잃어버린 예언서’를 창작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가산’이란 바로 예언을 가리킨다.

이 시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자신의 예언과 그림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창작한 것으로 위대한 ‘아르테미스 신전(파룬따파)’에 바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6. 파룬따파는 불법(佛法)

예언가는 미래에 한 가지 심상치 않는 큰 일이 발생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은 또 수많은 인류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는데 미래의 그 시기에 파룬따파가 세상에 널리 전해져 배우고 연마하는 사람은 얻기 힘든 기연에서 수익을 얻게 된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보기에 여기에는 특수한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때문에 그는 예언을 이용해 이 사건을 표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불법(佛法)과 불법수련(佛法修煉)’이란 주제를 표현하기란 아주 쉽지 않고 또 미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했다. 이에 노스트라다무스는 종이에 한 척의 큰 배를 그렸고 또 배 위에 하나의 ‘바퀴’를 그렸다. 수련 문화 중에서 ‘법선’(法船)이란 말이 있는데 사람이 일단 불법을 수련하고 수련에 들어오면 마치 법선에 오른 것과 같다고 한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사람들이 그래도 이해하지 못할까 우려해 자신이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법선 옆에 그린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을 하려면 경서를 보고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한 마리 ‘수사자’를 그렸다. 수사자의 머리 위에는 사방으로 빛을 내는 태양이 그려져 있는데 마치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빛은 수사자의 전신을 덮고 있다. 여기서 수사자는 ‘사자자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또한 태양과 ‘사자자리’의 관계도 아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단지 태양의 빛을 이용해 불법수련의 장엄함과 수승함을 표현한 것이다. 위에는 여전히 하나의 ‘바퀴’가 있다.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는 적극적이고 위로 발전하며 상서로운 느낌을 준다.

수련 문화에서 수사자 역시 특별한 함의를 지닌다. 수사자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상징하는데 수련인이 불법수련에서 마치 수사자처럼 용맹정진하는 것을 비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