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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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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이 멸망한다는 바위에 나타난 글의 비밀 아미산 도인이 밝힌 귀주 장자석의 진실한 내력 【정견망】 필자의 사부님은 아미산에서 1백여 년간 수련하신 분으로 수년 전 특이공능(特異功能 초능력)을 이용해 산으로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는 내게 기이한 변화를 목격하게 하신 후 세인들에게 알려주라고 당부하셨다!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평당(平塘)의 기이한 바위에 신의 글자가 나타나니 대륙 민중들은 시끌벅적하면서 놀랍고 기이하게 여기면서 이는 하늘의 뜻이 아닌가? 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산속에서 백여 년 간 참선하면서 조용히 붉은 재앙(紅禍 공산사당)이 오는 것을 보았고 지금은 또 그것의 운이 다한 것을 본다. 오고감이 백년에 불과했지만 무수한 생령(生靈)과 성명(性命)을 도살했으니 실로 대악(大惡)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서 해악이 가장 심한 지역은 중..
노스트라다무스 그림 예언서 해독 "요한계시록" 글/ 육문(陸聞) 【정견망】 7. 그림 속의 ‘요한계시록’ 이야기 2천여 년 전 예수의 12제자 중 요한은 외딴 섬에 유배되어 유명한 ‘요한계시록’을 썼다. 이것은 상징성이 아주 강한 예언으로 대 바빌론, 대음부(大淫婦), 붉은 짐승, 크고 붉은 용, 늙은 뱀, 마귀, 사탄, 어린 양과 짐승의 전투 등이 나오는데 상징과 비유의 수법으로 신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묘사한 것이다. 선지자 노스트라다무스는 요한계시록을 연구한 후 예수 그리스도가 요한에게 기록하게 한 그 큰 사건이 바로 오늘날 ‘바퀴’와 관련된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진지한 연구와 구상을 거쳐 계시록과 관련된 2폭의 그림을 그렸는데 바로 ‘대음부(大淫婦 큰 음녀 그림 6)’ ‘어린 양과 마르스의 검(그림 7)’이다. 이 그림 속에 나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극비 원고"비밀게시" 1. 노스트라다무스의 극비 원고 1994년 로마에 있는 이탈리아 국립도서관의 먼지로 뒤덮인 구석에서 매장된 지 이미 수세기가 지난 신비한 원고 한권이 발견되었다. 이 원고의 이름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번역되었다. 그중에는 80폭의 신비한 수채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림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이중 7폭의 그림에서 인류멸망의 날과 관련된 비밀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신비한 원고는 또 ‘잃어버린 예언서(Lost Book)’로도 불린다. 로마 도서전에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이 원고가 공개되자 의심할 바 없이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감추고 있는 비밀이 장차 역사의 어느 시각에 드러나면 수수께끼의 진상이 인류를 놀라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가 미셸 드 노스트라다무..
노스트라다무스 그림 예언서 "궁수"와 "여인" 글/ 육문(陸聞) 【정견망】 4. ‘바퀴’, ‘궁수’와 ‘여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 중에 “세번째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시에 네로가 등장하는데 네로는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로 자신의 궁궐을 확장하기 위해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하고 싶었다. 이에 사람을 시켜 로마 성 주위에 불을 질러 많은 가옥이 불타게 했다. 그 후 기독교 신자들이 방화했다며 죄를 뒤집어씌우고 로마시민들의 증오심을 선동해 기독교 신자들에게 잔혹한 박해를 가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네로가 로마 성을 불태운’ 이야기다. ‘예언집’에서는 “세번째 사람이 수위(首位)를 차지하고 네로보다 훨씬 나쁜 짓을 저지른다”고 했다. 전 중공 두목 장쩌민은 중공 ‘제3세대 영도인’으로 불렸으며 1999년 7월 파룬..
노스트라다무스 그림 예언서 "바퀴"의 비밀을 풀다. 글/ 육문(陸聞) 【정견망】 부록: 어떻게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수정본) (1) 거대한 위기의 도래 종교신앙에 대한 박해문제는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정교(正敎)가 세상에 전해질 때마다 모두 박해를 받았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 제자들은 인도에게 박해를 받았고 예수는 도를 전하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했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 신도들이 받은 박해는 종교박해 중의 전형적인 사례가 된다. 로마 통치자는 기독교 신도들을 건초더미와 함께 묶어 놓고 불을 지르거나 또는 원형경기장 안에 몰아넣고 사자 밥으로 만들었는데 당시 수많은 로마 민중들은 오히려 이를 오락으로 여겼다.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먹이가 되는 박해를 받는 로마 기독교 신도들 로마는 결국 기독교에 대한 박해 때문에 천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