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스트라다무스의 극비 원고
1994년 로마에 있는 이탈리아 국립도서관의 먼지로 뒤덮인 구석에서 매장된 지 이미 수세기가 지난 신비한 원고 한권이 발견되었다. 이 원고의 이름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번역되었다. 그중에는 80폭의 신비한 수채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림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이중 7폭의 그림에서 인류멸망의 날과 관련된 비밀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신비한 원고는 또 ‘잃어버린 예언서(Lost Book)’로도 불린다.
로마 도서전에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이 원고가 공개되자 의심할 바 없이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감추고 있는 비밀이 장차 역사의 어느 시각에 드러나면 수수께끼의 진상이 인류를 놀라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가 미셸 드 노스트라다무스는 1503년 12월 14일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가 저술한 ‘《예언집》(Les Propheties 중문으로는 제세기諸世紀로 번역)’은 약 천편에 달하는 4행시를 모은 예언시집이다. 이 책에는 근대 인류역사상 수많은 중요 사건들이 모두 예견되어 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의 흥기(興起), 히틀러의 출현, 세계대전, 영국의 다이애너 황태자비의 죽음, 뉴욕 911테러 등이다. 그의 예언이 놀랄 만큼 정확했기 때문에 줄곧 연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왔다.
일부 국가의 과학자와 학자 및 정보기관에서는 줄곧 마야예언과 ‘예언집’을 연구해왔다. 노스트라다무스가 그린 그림의 출현은 그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고 그들은 ‘잃어버린 예언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7폭의 그림을 복제해 출판하고 현대과학과 각종 예언 및 고고학 발견을 결합하거나 심지어 천체운행의 법칙과 데이터에 근거해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들은 노스트라다무스의 7편 그림 속에 중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노스트라다무스는 왜 이 그림책을 남겼을까? 그가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알리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잃어버린 예언서’의 7편 그림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은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을 통찰하는 진정한 큰일이며 앞으로 본문에서 밝힐 내용이다.
2. 1999년 7월 행성의 십자배열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7월’예언에 관해서는 일찍부터 많은 논쟁이 존재해왔다. 연구자들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중에서 직접 시간을 명기한 것은 분명 아주 특별하며 인류의 운명에 관련된 중대한 일이라고 여겨왔다. 때문에 연구자들은 이 예언에 대해 많은 추측과 상상을 했고 또 세계종말의 날이나 지구가 훼멸되는 것 등을 연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수수께끼의 진상은 대체 무엇일까?
노스트라다무스는 생전에 여러 곳에서 ‘마르스(Mars)’의 출현을 언급했고 ‘마르스’가 장차 인류에 거대한 재앙을 가져다줄 거라고 했다. 이 때문에 그는 ‘1999년 7월’에 관한 예언에서 이렇게 썼다.
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앙골모아의 왕을 부활시키기 위해
전후로 마르스가 천하를 통치하리라
사람들이 행복한 생활을 얻도록
이 예언에 나오는 ‘마르스’는 사실 마르크스(Marx 예언에서는 보통 이름 중에서 하나의 발음을 바꾼다.)를 가리킨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다시 말해 공산당을 대표한다. 그렇다면 1999년 7월 대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이 시기에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시작한 것이다. 도처에서 사람을 체포하고 구타하며 세뇌반을 꾸리고 파룬궁 수련자들을 감옥이나 노교소에 가두는 등 박해를 진행했다. 또 언론에서는 매일 떠들썩하게 파룬궁을 비방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으며 사람마다 모두 태도를 표시하도록 서명을 강요했다. 설령 집안에 있을지라도 공기가 응고된 것 같은 공포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박해가 발생하고 한 달 뒤인 1999년 8월 18일 태양계 내에서 태양, 달과 행성이 운행하는 중에 거대한 ‘행성 십자배열(Grand Cross)’을 만들었다. 이 기이한 천문 현상의 출현은 한가지 특수한 함의를 대표한다. 이때 파룬궁은 한창 박해를 받고 있었고 중공매체는 매일 반복적으로 각종 거짓 뉴스를 방송하며 사람들을 세뇌하고 전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었다.
바로 이 시기에 ‘행성십자배열’이 출현한 것은 의심할 바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는 세상의 종말이 온 게 아닐까?” 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증오, 분노, 곤혹과 안절부절 하는 가운데 1999년을 보냈다.
물론 세계의 종말은 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거나 또는 비웃거나 또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예전처럼 순서에 따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행성십자배열’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십자가는 고대 유럽에서 형벌도구의 하나였다. 과거에는 수형자를 십자가 위에 묶고 쇠못을 박아 죽이거나 또는 불에 태워 죽였다. 오랜 점성학 이론에 따라 십자가를 해석하면 그것의 함의는 바로 ‘죽음’이다. 태양계에 거대한 ‘십자가’가 나타난 것은 분명 ‘거대한 죽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점성가 노스트라다무스는 ‘행성십자배열’의 출현을 예견한 것인가? 이 때문에 ‘1999년 7월’ 예언을 쓰게 된 것일까?
3. ‘바퀴(輪)’와 ‘책’ 이야기
‘잃어버린 예언서’의 그림은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또 다른 방법이었다. 회화는 형상을 통해 사건의 줄거리를 더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고 사건을 아주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회화는 또 언어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비밀을 더 잘 지킬 수 있다.
‘잃어버린 예언서’의 출현은 분명 많은 나라의 연구자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주었다. 그들은 노스트라다무스의 7폭 그림을 복제해 출간한 후 책상 위에 놓고 연구를 진행했는데 매 그림마다 모두 하나의 ‘바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생명의 바퀴’라고 불렀다. 7폭 그림 속에서 2폭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자화상인데 손에 한권의 책을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가리켜 ‘생명의 책’이라 부른다. 그들은 비록 7폭 그림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연구를 진행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이 신비한 원고를 해독하려면 바로 ‘바퀴’와 ‘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그림은 노스트라다무스 자화상 중의 하나다. 그림 윗부분에 ‘바퀴’가 하나 있고 황색의 ‘큰 배’가 ‘바퀴’ 아래 바짝 붙어 있다. 큰 배의 옆에는 노스트라다무스가 한권의 책을 들고 진지하게 읽고 있다. 아래에는 또 세 여인을 그렸다. 이 세 여인은 서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데 한 가닥 띠를 통해 입으로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예언가가 그림을 그린 이유는 미래인들이 보고 쉽게 이해시키게 하려는 것이다. 만약 예언이 너무 어렵다면 사람들이 보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가장 간단한 사유방식으로 그림을 창작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해석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바로 ‘바퀴’, ‘큰 배’, ‘책’, 노스트라다무스를 하나로 연결해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바퀴와 관련 있는 책, 바퀴와 관련 있는 큰 배, 노스트라다무스가 바퀴에 관한 책을 보고 큰 배에 오른다.
7폭의 그림은 거의 모든 그림에 하나의 바퀴가 나온다. 때문에 노스트라다무스의 이 7폭의 그림은 바퀴를 주제로 한 것이며 설명하는 것도 모두 바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1992년 중국 장춘(長春)에서 하나의 기공이 전해져 나와 신속하게 중국 대지에 널리 퍼졌다. 이후 세계 100여개 나라와 지역에 널리 전파되어 수련하는 사람이 약 1억에 달했다. 그들은 ‘진선인(眞善忍)’을 지도원칙으로 삼아 5가지 공법의 동작을 수련했다. 그들이 배우는 주요 저작은 바로 ‘바퀴’와 관련된 책으로 《전법륜(轉法輪)》이라 불린다. 책의 제목과 내용 및 공법에 모두 바퀴(輪)가 들어 간다. 파룬궁의 전파방식은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마치 그림에서 세 여인이 입으로 서로 전하는 것과 같았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아마 어떤 독자는 말할 것이다.
“파룬궁이라면 바로 중공이 박해하는 그 파룬궁을 말하는가? 바퀴와 관련이 있다고? 아, ‘륜(輪)’이 있구나.”
또 어떤 독자는 말할 것이다.
“당신이 파룬궁이라고 하면 파룬궁이 되는가?”
물론이다. 세상에는 ‘바퀴’가 있는 책이 또 존재할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잠시 한가지 해독으로 보고 뒤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그림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한권의 책을 들고 진지하게 보고 있다. ‘바퀴’와 배, 배와 책, 책과 노스트라다무스가 하나로 연결되어 완전한 화면을 구성한다. 예언가는 간단한 그림으로 한 가지 특수한 정보를 표현하려 했으니 바로 노스트라다무스가 이 책을 보고 큰 배에 오르려 한다는 것이다. 이 그림 속의 큰 배는 분명 ‘바퀴’를 주제로 한 것으로 ‘바퀴’와 관련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노아 가족은 신의 계시를 받아 큰 배를 만들었고 그들 일가족은 이를 통해 위험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그린 이 큰 배는 노아의 생명을 구한 방주와 닮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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